배천조씨/문중 인물사

교사로서 사명감을 실천하신 趙龍洙(조용수) 교장선생님

조상엽 2024. 6. 16. 11:17

교사사로서 사명감을 실천하신 趙龍洙 교장선생님

교육자로서 누구보다도 사명감에 투철하시었던 조용수 교장선생님은 연백군 금산면 예의리의 富農家庭에서 1906년 출생하시었다.
조용수 선생님은 천도제약주식회사를 설립한 조사수(조원준) 사장의 친형님이기도 하다.
조용수 선생님은 금산면립보통학교(현 초등학교)를 제 1회로 졸업하시고 사리원농업학교로 진학한다. 조 선생님의 소년시절은 책임감이 투철한 영리한 소년이었다.
조 선생님의 생가가 부농이었기에 조 소년은 생가의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 농업학교로 진학한 것이다. 농업학교에서 농업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배워 낙후된 농촌을 부흥시켜 보겠다는 의지가 작용하여 농업학교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初志를 바꿔 黃海師範學校로 진학, 교사의 꿈을 키운다.
학교를 졸업한 조 선생님은 모교인 금산초등학교로 발령을 받고 교사로 부임한다. 조 선생님의 생가인 예의리에서 금산초등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4km. 당시만해도 교통수단이 전무하였던 관계로 조 선생님은 자전거를 구입, 출퇴근을 하였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하루의 결근이 없이 출근하여 학생들을 교육한 조 선생님은 교사의 초년생이면서도 성실과 사명감으로 학생들을 훈육하시었기에 면민들로부터 총애를 받는 교사였다.
평교사 생활은 해를 거듭할 수록 선생님의 사명감을 더욱 빛을 발해 교사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이란 정평이 나 연백군에서는 물론 黃海道內까지 조 선생님의 위상은 높이 평가되었다. 그런 평가에 부응하여 도지사의 표창을 받게된다. 조 선생님은 승진이 되어 금산초등 학교의 교감에 오르게 된다. 교감이 되신 후에도 조 선생님은 더욱더 교육자로서의 긍지를 지키며 교무에 정성을 기울인다.
8.15 해방이 되어 일제가 물러가고 조국의 통일을 염원했으나 38도선이란 국경아닌 국경이 설정되어 금산면은 38선 이북에 편입, 공산치하의 학정을 받게 된다. 학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校名이 人民學校로 변하게 되었고, 교육내용도 다분이 정치적인 색채를 띄게 되자 조 교감선생님은 남하를 결정, 대한민국으로 피난 아닌 피난을 온다. 그리고 38선 이남에 위치한 유곡초등학교의 교장 발령을 받아 교장으로 취임한다. 조 교장선생님은 학교를 끝으로 교단을 떠나신다. 자손들이 생활하는 서울로 상경, 잠시 쉬시다가 친동생이 운영하는 천도제약(주)의 회장으로 취임한다. 그 때 천도제약은 극심한 운영난에 봉착해 있었기 때문에 조 회장과 조 사장 형제는 회사의 정상화에 온갖 힘을 기울였으나 이도 무위로 돌아가 조 회장은 회장직을 맡은지 2년만에 회사는 비운의 폐사를 하게 된다.
조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 가정에서 잠시 쉬다가 용산역전 대로에 천도약국이란 약국을 개점한다. 그러나 천도약국도 시류에 따라 경영을 이겨내지 못하고 개점 5년만에 폐업을 한다. 조 회장은 약국폐업 후 가정에서 소일하시다가 1973년 78세를 천수로 생을 마감하신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며 조 선생님의 자손들은 훌륭이 성장하여 지금 사회의 역군으로 맡은바 책무를 열심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2005년 금산면지 발간위원회에서 제작한 금산면지에 기재된 조부님 작은 조부님 두 형제분들의 인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