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천조씨/문중 인물사

製藥업계의 선구자-(주)천도제약 조사수(조원준) 사장님

조상엽 2024. 6. 18. 13:04

製藥업계의 선구자 - (주)천도제약 조사수(원준) 사장님

조원준 製藥株式會社 사장은 1915년 연백군 금산면 예의리에서 출생하시었다. 조 사장의 생가는 금산면에서도 부농에 속하는 가정이었다.
조 사장은 金山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사리원농업학교로 진학한다. 조 사장이 농업학교를 택해 진학한 이유는 낙후된 농촌을 부흥시키는데는 전문적인 농업교육을 받는데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농촌지도자의 꿈을 키워오던 조 사장은 농업학교를 졸업하면서 생각이 바뀐다.
조 사장은 자기의 이상은 농촌지도자보다는 넓은 시야를 갖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세계로 도약하기로 마음 먹고 서울로 상경하여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로 진학한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조사장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바 있어 20대 후반에 동양의과대학 약학과에 입학, 약학과를 졸업하는 해에 국가시험을 거쳐 藥師免許를 국가로부터 획득한다. 약사면허를 받은 조 사장은 국내에서 제일가는 약사가 되고자 노력하면서 꾸준이 약에 대한 연구를 한다.
그리고 서울 종로2가에 천도製藥株式會社라는 제약회사를 설립한다. 그 때 조 사장의 나이는 30대 초반. 천도제약에서 최초로 개발하여 생산한 약이 국민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단발구론산이란 음료로 된 드링크제였다. 당시만해도 음료로 된 건강약품은 전무한 시기였다. 그 외에도 링거주사제를 비롯하여 다수의 주사제와 아리랑 비타민제, 노바A 감기약 등 수종의 약품을 개발, 시판에 들어간다.
천도제약에서 최초로 약국을 통해 시판한 단발구론산은 하루아침에 인기가 치솟아 약국에서는 없어서 팔지 못 할 지경에까지 이른다. 조사장은 천도제약의 약품이 인기리에 거래되자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조 사장이 호황을 맞고 있을 때 모교인 동양의과대학은 경영난에 빠져 폐교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동양의과대학에서 조 사장에게 구원을 청하자 조 사장은 쾌히 승낙하고 회사주식 일부와 축적된 자금을 투입 동양의과대학의 정상화에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빈약한 재단으로 설립되었던 학교를 정상화시키기에는 조 사장의 재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동양의과대학의 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2년간 피나는 노력을 하였으나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동양의과대학은 폐교의 비운을 맞는다.
그때부터 조 사장은 의욕을 상실하고 실의에 빠진다. 1970년대초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대형 제약회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설립되었고, 시류에 따라 새로운 약품이 개발되면서 약업계의 판도는 일대 변혁을 가져온다. 항생제가 홍수처럼 시중 약국에서 판을 쳤고 그 외의 건강약품도 하루가 다르게 개발, 시판되었다. 천도제약은 이런 와중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업친데 덮친격으로 조 사장은 건강을 해쳐 자유롭게 활동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다. 생각 끝에 천도제약을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회사재산을 모두 경희대학교에 기부한다. 경희대학교 설립자인 조용식 이사장과는 종친이었기에 믿고 기부를 한 것이다.
경희대학교에서는 조 사장을 학교법인 이사로 선임, 임기 3년의 이사직을 맡긴다. 조 사장은 건강 때문에 이사직을 수행할 수 없게되자 이사직을 사임하고 병치료차 일본으로 간다. 일본 게이오대학부설 의과대학 병원에 입원, 신병치료를 받았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1973년 60세를 천수로 객지인 일본땅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조 사장에게는 2남 1녀의 자손이 있어 지금 그 자손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맡은바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고 있다.

<조 사장에 얽힌 일화 한토막>
조 사장이 20대의 나이로 상해임시정부 주석의 자격으로 귀국하여 경교장에 계신던 김구 선생님을 찾아갔다. 김구 선생을 뵈옵고 인사를 드리자 김구 선생은 조 사장에게 본관과 이름자를 물어보셨다. 김구 선생의 물음에 조 사장은 본관은 白川이고 이름자는 뱀사에 물가라고 대답하였더니 김구 선생 말씀이 이름자에 뱀사를 써서는 어긋나는 것이니 뱀사를 빼고 개명을 하라고 하셨다. 김구 선생의 말씀을 듣고 경교장을 물러나온 조 사장은 그 길로 작명가를 찾아가 개명을 하였다. 개명한 이름이 원준이란 이름이고 제약회사를 설립할 때의 상호도 김구 선생의 말씀중에 천도란 말씀이 있었기에 '천도'라는 상호로 회사를 설립하였다고 한다.


2005년 금산면지 발간위원회에서 제작한 금산면지에 기재된 조부님 작은 조부님 두 형제분들의 인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