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칠백의총(錦山 七百義塚)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선생과 의승장 영규(靈圭)대사가 이끄는 칠백여 명의 의병이 조국강토를 지키기 위해 만오천여 명의 왜적과 싸우다 모두 순절하자 그분들의 유해를 함께 모셔놓은 곳이다.임진왜란(선조 25년 4월, 1592)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8월 1일(음력)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고, 18일에는 호남순찰사인 권율(權慄)장군이 이끄는 관군(官軍)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이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금산 연곤평 싸움에서 필사무퇴(必死無退)의 결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