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천조씨 17

칠백의총 이야기

금산 칠백의총(錦山 七百義塚)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의병장 조헌(趙憲)선생과 의승장 영규(靈圭)대사가 이끄는 칠백여 명의 의병이 조국강토를 지키기 위해 만오천여 명의 왜적과 싸우다 모두 순절하자 그분들의 유해를 함께 모셔놓은 곳이다.임진왜란(선조 25년 4월, 1592)이 일어나자 조헌선생은 의병을 일으켜 8월 1일(음력) 영규대사와 함께 청주성을 탈환하고, 18일에는 호남순찰사인 권율(權慄)장군이 이끄는 관군(官軍)과 함께 금산의 적을 협공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적의 기세로 보아 아군이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열세임을 탐지하고 작전을 바꾸어 기일을 늦추자는 편지를 조헌선생에게 띄웠으나 미처 받아보지 못한 채 출병한 선생의 의병부대는 금산 연곤평 싸움에서 필사무퇴(必死無退)의 결전을 ..

배천조씨 2024.08.07

배천 조씨

배천 조씨(白川趙氏)는 황해남도 배천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조지린(趙之遴)이 고려 목종(穆宗) 때 이부시랑 지은대사(吏部侍郞 知銀臺事)로 임명되었고, 1011년(현종 2년)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참지정사(叅知政事)에 이르렀다.간략 정보 나라, 관향 ...배천 조씨 白川趙氏 나라 한국 관향 황해남도 배천군 시조 조지린(趙之遴) 집성촌 황해남도 배천군, 평안남도 룡강군,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주요 인물 조반, 조기, 조헌, 조마리아, 조기홍, 조진만, 조경철, 조영식, 조성식, 조건호, 조장희, 조영장, 조윤길, 조건식, 조원진, 조정원, 조인원 인구(2015년) 75,978명역사《고려사》에 의하면 시조 조지린(趙之遴)은 백주(白州)..

배천조씨 2024.08.07

배천 조씨(白川趙氏) - 66,155명

배천 조씨(白川趙氏)-66,155명 배천은 한자로는 백천(白川)이 맞다. 그러나 지명은 배천으로 부르기 때문에 배천유씨라 한다. 시조 조지린(趙之遴)은 중국 송나라 태조(조광윤)의 맏아들인 조덕소(趙德昭:위왕)의 셋째 아들로 979년(고려 경종 4년) 황제 등극 문제로 일어난 난을 피하여 우리나라에 건너와 지금의 황해도 배천군 도태리에 정착했다. 그는 고려 현종 때에 좌복야 참지정사가 되었다. 그 뒤 아들 조양유(趙良裕)가 고려 덕종과 정종 때 판위위사승(判衛尉寺丞)을 지냈고, 찬화익조공신(贊化翊祚功臣) 문하시중으로 백천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배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묘소는 황해도 연백군 운산면 도태리 고정산에 있고, 향사일은 10월 1일이다. 고려시대에 평장사를 지낸 조중장(趙仲璋)을 ..

배천조씨 2024.07.14

배천조씨, 宋 태조 조광윤 족보에 오른다

시조 조지린 화 피해 고려 정착 인정 7차 세계조족간친대회서 등재 결정 전국 8만5000명의 배천조씨(白川趙氏)가 본래 조상을 되찾았다. 세계중화성씨대전편찬위원회가 지난 5월 중국 허베이에서 열린 제7차 세계조족간친대회(世界趙族懇親大會)에서 배천조씨를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족보에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배천조씨대종회는 9일 밝혔다. ‘증보문헌비고’, ‘조선씨족통보’ 등에 따르면 배천조씨는 송태조 조광윤의 후손이다. 조광윤의 아들이 위왕(魏王) 조덕소(趙德沼)이고, 그 아들이 배천조씨의 시조인 조지린(趙之?)이다. 송태조 조광윤이 49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죽자 동생 조광의가 황위를 잇는다. 조광의는 황위에 오르자 위협이 되는 일가친척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조광윤의 아들 조덕소는 황제인 조광의에게 진언..

배천조씨 2024.07.14

송 태조의 후손들 황실의 난 피해 고려에 넘어와 정착 - 배천조씨, 임천조씨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배천조씨·임천조씨송 태조의 후손들 황실의 난 피해 고려에 넘어와 정착송 태조 조광윤의 후손인 배천조씨·임천조씨 배천조씨(白川趙氏)와 임천조씨 (林川趙氏)는 송나라를 세운 태조 조광윤(趙匡胤)의 후손들이다. 조광윤의 아들이 위왕(魏王) 조덕소(趙德沼)이고, 그 아들이 배천조씨의 시조인 조지린이다. 또 조덕소의 아들 중 기왕(冀王) 조유길(趙惟吉)이 있는데, 조유길의 아들이 임천조씨의 시조인 조천혁(趙天赫)이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배천조씨 시조 조지린은 임천조씨 시조 조천혁의 숙부가 되는 셈이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고려에 들어와 정착을 하게 되었는지는 ‘증보문헌비고’나 ‘조선씨족통보’ 등에 나와 있다. 즉, 조광윤의 적장자인 조덕소의 아들이었지만, 황실의 난을 피해 고려에..

배천조씨 2024.07.14

배천조씨 조형물 및 유래문

대전시 중구에 위치한 뿌리공원▸작품 설명  본 작품은 순수창작 작품으로 조각의 여러 장르중 반구상 계열의 작품이다. 부부가 하나되어 화합하고 번영하는 형상으로 조각하였고 좌대 양 옆은 손으로 선조를 떠 받치는 형상으로 디자인 하였다. 배천조씨(百川趙氏) 얼이라 할 수 있는 충(忠) 효(孝) 진(眞) 정신을 겸비하여 자손만대에 새겨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문중 유래 배천조씨(白川趙氏)의 시조는 지린(之?)공이며 고려 금자광록대부 좌복야 참지정사를 지낸 공화공이다. 공은 송태조 조광윤의 손자로 궁중권력 다툼을 피하여 서기 979년 고려 경종 4년 황해도 배천(白川)에 정착하였고 2世 배천군 양유공때 본관을 배천으로 삼았다.  문정공 선정 강회공 중장과 대제학 문성공 옥은 평란공신 충무공 문주는 정국공신 부원..

배천조씨 2024.07.14

숙위공 조반의 역사적 발자취

숙위공 조반의 역사적 발자취조근환(대종회장)머리말 숙위공의 성장과 청년기 환국과 조정에의 출사 시산조업전 탈취사건과 토지개혁의 시작 탁월한 외교가 숙위공 숙위공 쭈름 공신회맹(피도솔별) 참여 숙위공의 자녀들 숙위공의 발자취 맺는말 1. 머리말 고려 말과 조선조 초기에 국제정치의 격변기에 나라와 나라를 오가며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외교적 성과를 거두어 국가의 존망이 달린 사안마다 탁월한 외교가로서 수완을 발휘하고 업적을 쌓은 숙위공 조반에 대하여는 몇 차례 종보에 게재된 바 있었으나 시간이 흘러 다시 한 번 숙위공의 성품과 행적 및 역사적 발자취 등을 살펴본다. 선조나 종친의 업적이나 공적을 쓰는 일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겠으나 기존의 역사적 사실과 각종 자료에 나타난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숙..

製藥업계의 선구자-(주)천도제약 조사수(조원준) 사장님

製藥업계의 선구자 - (주)천도제약 조사수(원준) 사장님조원준 製藥株式會社 사장은 1915년 연백군 금산면 예의리에서 출생하시었다. 조 사장의 생가는 금산면에서도 부농에 속하는 가정이었다.조 사장은 金山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사리원농업학교로 진학한다. 조 사장이 농업학교를 택해 진학한 이유는 낙후된 농촌을 부흥시키는데는 전문적인 농업교육을 받는데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농촌지도자의 꿈을 키워오던 조 사장은 농업학교를 졸업하면서 생각이 바뀐다.조 사장은 자기의 이상은 농촌지도자보다는 넓은 시야를 갖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세계로 도약하기로 마음 먹고 서울로 상경하여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로 진학한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조사장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바 있어 20대 후반에 동양의과대학 약학과..

배천조씨 문중의 여걸 조마리아 여사

훌륭한 인물 뒤에 더 훌륭한 어머니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조성녀(배천조씨 30세손  세례명 마리아) 여사는 1862년 4월 8일 황해도 해주군에서 배천조씨 선과 원주 원씨의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조마리아의 가문은 조선 선조 때 만경현령을 지낸 조복립, 효종 때 한성판윤에 오른 조관, 현종 대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은 조응건 등을 배출한 명문가였다.조마리아의 오빠 조규증(1854~1911)과 사촌 오빠 조철증은 고종 때에 각각 행 수군절제사(정3품)와 충훈부도사 겸 선략장군(종4품)을 지냈다.조마리아는 황해도 해주군 광석동에 사는 동 갑내기 안태훈(1862~1905)과 혼인하였다. 안태훈의 본관은 순흥으로 본래 해주부의 향리 가문이었으나 5대조 안기옥 이래 무과급제 자를 다수 배출하..

뇌과학의 세계 최고 권위자 조장희 박사

뇌(腦과학의 세계 최고 권위자 조장희 박사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뇌과학자조장희熙) 박사는 1936년 7월 15일생으로 황해도 연백군 금산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배천조씨 32세손(世孫) 유후공휴파(留侯公派)이다.황해도 연백군 금산면 예의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6.25 전쟁 전에 서울로 이사 왔다. 한국전쟁 때 대구로 피난을 갔는데 대구역에 가보니 어린아이들이 구리반지를 광내서 '코리아 골드'라며 미군에게 팔고 있었다. 전쟁 통에 장사해보겠다며 어머니에게 담배 한 보루 값을 받아 뒤로 빼낸 미군 PX 물건을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했다. 또래 장사꾼은 숫자를 속이고 거짓말을 했으나 그는 정직하게 계산하여 미군들의 신용을 얻었다고 회고하고 있다.조장희 박사는 휴전 후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에서 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