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천조씨/문중 인물사 6

숙위공 조반의 역사적 발자취

숙위공 조반의 역사적 발자취조근환(대종회장)머리말 숙위공의 성장과 청년기 환국과 조정에의 출사 시산조업전 탈취사건과 토지개혁의 시작 탁월한 외교가 숙위공 숙위공 쭈름 공신회맹(피도솔별) 참여 숙위공의 자녀들 숙위공의 발자취 맺는말 1. 머리말 고려 말과 조선조 초기에 국제정치의 격변기에 나라와 나라를 오가며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외교적 성과를 거두어 국가의 존망이 달린 사안마다 탁월한 외교가로서 수완을 발휘하고 업적을 쌓은 숙위공 조반에 대하여는 몇 차례 종보에 게재된 바 있었으나 시간이 흘러 다시 한 번 숙위공의 성품과 행적 및 역사적 발자취 등을 살펴본다. 선조나 종친의 업적이나 공적을 쓰는 일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겠으나 기존의 역사적 사실과 각종 자료에 나타난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숙..

製藥업계의 선구자-(주)천도제약 조사수(조원준) 사장님

製藥업계의 선구자 - (주)천도제약 조사수(원준) 사장님조원준 製藥株式會社 사장은 1915년 연백군 금산면 예의리에서 출생하시었다. 조 사장의 생가는 금산면에서도 부농에 속하는 가정이었다.조 사장은 金山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사리원농업학교로 진학한다. 조 사장이 농업학교를 택해 진학한 이유는 낙후된 농촌을 부흥시키는데는 전문적인 농업교육을 받는데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농촌지도자의 꿈을 키워오던 조 사장은 농업학교를 졸업하면서 생각이 바뀐다.조 사장은 자기의 이상은 농촌지도자보다는 넓은 시야를 갖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세계로 도약하기로 마음 먹고 서울로 상경하여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로 진학한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조사장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바 있어 20대 후반에 동양의과대학 약학과..

배천조씨 문중의 여걸 조마리아 여사

훌륭한 인물 뒤에 더 훌륭한 어머니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조성녀(배천조씨 30세손  세례명 마리아) 여사는 1862년 4월 8일 황해도 해주군에서 배천조씨 선과 원주 원씨의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조마리아의 가문은 조선 선조 때 만경현령을 지낸 조복립, 효종 때 한성판윤에 오른 조관, 현종 대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은 조응건 등을 배출한 명문가였다.조마리아의 오빠 조규증(1854~1911)과 사촌 오빠 조철증은 고종 때에 각각 행 수군절제사(정3품)와 충훈부도사 겸 선략장군(종4품)을 지냈다.조마리아는 황해도 해주군 광석동에 사는 동 갑내기 안태훈(1862~1905)과 혼인하였다. 안태훈의 본관은 순흥으로 본래 해주부의 향리 가문이었으나 5대조 안기옥 이래 무과급제 자를 다수 배출하..

뇌과학의 세계 최고 권위자 조장희 박사

뇌(腦과학의 세계 최고 권위자 조장희 박사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뇌과학자조장희熙) 박사는 1936년 7월 15일생으로 황해도 연백군 금산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배천조씨 32세손(世孫) 유후공휴파(留侯公派)이다.황해도 연백군 금산면 예의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6.25 전쟁 전에 서울로 이사 왔다. 한국전쟁 때 대구로 피난을 갔는데 대구역에 가보니 어린아이들이 구리반지를 광내서 '코리아 골드'라며 미군에게 팔고 있었다. 전쟁 통에 장사해보겠다며 어머니에게 담배 한 보루 값을 받아 뒤로 빼낸 미군 PX 물건을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했다. 또래 장사꾼은 숫자를 속이고 거짓말을 했으나 그는 정직하게 계산하여 미군들의 신용을 얻었다고 회고하고 있다.조장희 박사는 휴전 후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학교에서 전자..

배천조씨 시조와 조상 인물

http://www.sungssi.co.kr/news_gisa/gisa_view.htm?gisa_idx=30642 배천조씨,배천조씨시조,조지린,배천조씨조상인물배천조씨의 연원 중국 사기와 송사를 상고한 바 조씨의 처음은 중국고대 황제에 이은 전욱부터 그 후손 백익의 13세손 조부를 주목왕이 조성에 후를 봉하였으니 이때 성을 얻게 되었다. 그후 주www.sungssi.co.kr배천조씨,배천조씨시조,조지린,배천조씨조상인물작성일 : 2018-01-23 14:15수정일 : 2019-09-05 14:42배천조씨의 연원중국 사기와 송사를 상고한 바 조씨의 처음은 중국고대 황제에 이은 전욱부터 그 후손 백익의 13세손 조부를 주목왕이 조성에 후를 봉하였으니 이때 성을 얻게 되었다. 그후 주나라가 쇠퇴하고 진나라가 육국..

교사로서 사명감을 실천하신 趙龍洙(조용수) 교장선생님

교사사로서 사명감을 실천하신 趙龍洙 교장선생님교육자로서 누구보다도 사명감에 투철하시었던 조용수 교장선생님은 연백군 금산면 예의리의 富農家庭에서 1906년 출생하시었다.조용수 선생님은 천도제약주식회사를 설립한 조사수(조원준) 사장의 친형님이기도 하다.조용수 선생님은 금산면립보통학교(현 초등학교)를 제 1회로 졸업하시고 사리원농업학교로 진학한다. 조 선생님의 소년시절은 책임감이 투철한 영리한 소년이었다.조 선생님의 생가가 부농이었기에 조 소년은 생가의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 농업학교로 진학한 것이다. 농업학교에서 농업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배워 낙후된 농촌을 부흥시켜 보겠다는 의지가 작용하여 농업학교를 택한 것이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初志를 바꿔 黃海師範學校로 진학, 교사의 꿈을 키운다.학교를 졸업한 조 ..